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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 숫자가 너무나 차가워서 외면하고 싶을지라도, 우리는 그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2024년 대한민국 개신교의 성적표를 펼쳐보았습니다.
1. 50대 1의 사회학
현재 추산되는 '실제 교회 출석 교인'은 약 544만 명입니다. 그리고 목회자(목사)의 수는 대략 10만 명에서 12만 명 사이로 추산됩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아주 단순하고도 명확한 숫자가 나옵니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영적인 의미를 떠나, 지극히 현실적인 '경제학'의 관점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겠습니다.
2. 교회의 존재 목적이 '생존'이 될 때
교인 1명이 한 달에 평균 10만 원의 헌금을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50명이 모인 교회의 한 달 재정은 500만 원입니다.
이 500만 원은 어떻게 쓰일까요?
- 상가 임대료와 관리비: 최소 150~200만 원
- 목회자 4인 가족 최저 생계비: 250~300만 원
남는 돈은 '0원'입니다.
이 계산서가 보여주는 한국 교회의 현주소는 참혹합니다. 교회가 헌금을 걷어서 하는 일이 고작 "건물주 월세 내기"와 "목사 1명 먹여 살리기"로 끝나는 구조입니다. 구제? 선교? 다음 세대 교육? 이 구조 안에서는 불가능한 사치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조직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성도가 존재하는 '주객전도'가 일어나는 지점입니다.
3. 공급 과잉과 각자도생의 비극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입니다. 성도 수는 줄어드는데, 신학교에서는 매년 수천 명의 목회자가 쏟아져 나옵니다. 이들은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려 5만여 개의 상가 교회를 차리고, 50명의 성도를 확보하기 위한 무한 경쟁에 돌입합니다.
'생계형 목회'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성도가 떠나면 당장 이번 달 월세와 아이들 학원비가 끊깁니다. 목회자는 본의 아니게 성도의 비위를 맞추는 '서비스업 종사자'가 되고, 설교는 듣기 좋은 말로 채워지며, 교회는 헌금 주머니를 지키기 위한 방어적인 집단으로 변질됩니다.
이것은 목회자 개인의 타락 문제가 아닙니다. '50대 1'이라는 깨진 구조가 강요하는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4. 판을 뒤집는 제안: '미자립'을 넘어 '자립'으로
물을 아무리 부어도 차지 않는 깨진 독에 계속 물을 부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 독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는 이 구조적 모순을 타파할 두 가지 확실한 대안을 제안합니다.
첫째, 목회자의 '경제적 독립' (이중직의 양성화)
"성도의 헌금으로만 사는 전업 목사" 모델은 이제 상위 10% 교회의 이야기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목사가 텐트메이커(이중직)가 되어 자기 생계를 스스로 책임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 교인 50명이 아니라 10명만 있어도 교회는 유지됩니다.
- 목사 월급으로 나가던 헌금은 전액 가난한 이웃과 청년들을 위해 쓰일 수 있습니다.
- 성도들은 "내 헌금이 교회 유지비가 아니라 진짜 복음을 위해 쓰인다"는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 목사는 돈 때문에 성도 눈치를 보지 않고, 진짜 진리를 선포할 수 있는 자유를 얻습니다.
둘째, '1목사 1교회'의 폐기와 '컨소시엄'
50명 미만의 미자립 교회 5개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5명의 목사가 각자 5군데의 월세를 내고, 5번의 설교를 준비하고, 5번의 관리비를 냅니다. 이것은 규모의 비경제이며 낭비입니다.
만약 이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연합한다면?
- 5곳의 월세를 한 곳에 집중하여 훨씬 쾌적한 공간을 얻습니다.
- 5명이 돌아가며 설교하고 사역하여 퀄리티를 높입니다.
- '관리자형 목사' 5명이 아니라, 상담, 찬양, 교육 등 각자의 은사에 맞게 사역하는 '팀 플레이어'가 됩니다.
결론: 새로운 그릇을 준비하며
50명이 목사 1명을 먹여 살리는 것이 교회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먼저 기득권(전임 사역의 환상)을 내려놓고, 성도들은 '내 교회'라는 소유욕을 내려놓고 연합할 때, 우리는 비로소 '건물주와 목사'를 위한 교회가 아닌,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진짜 교회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밥먹는교회'를 시작하고, '컨소시엄 모델'을 외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