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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하나님이 다 용서하셨다'는 말의 폭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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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12.10 05:40
진짜 용서는 가해자의 입술이 아니라, 피해자의 회복에서 시작됩니다.

뉴스에서 종종 보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감옥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내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며 평온한 미소를 짓는 모습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피해자 가족들의 심정은 어떨까요? 피가 거꾸로 솟을 것입니다. "내가 아직 용서 못 했는데, 지가 뭔데 하나님한테 용서받았대?"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기독교는 세상의 조롱거리가 됩니다. "기독교의 신은 참 편리하네. 사람 죽여놓고 기도 한 번 하면 퉁쳐주니까." 과연 그럴까요? 성경이 말하는 용서가 그렇게 값싼 것일까요?

1. 예수님의 시선은 언제나 '약자'를 향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죄인'이라고 하면 범죄자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2천 년 전 유대 사회에서 '죄인'이라는 딱지는 주로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붙여졌습니다. 돈이 없어 제사를 못 드리고, 몸이 아파 성전에 못 들어가는 이들을 종교 지도자들이 '부정하다'며 죄인 취급했던 것이죠.

예수님이 "내가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 것은, 악당들의 죄를 눈감아주겠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억울하게 죄인 취급받는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존엄을 세워주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 가해자가 이 말을 자기합리화의 도구로 쓰는 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2. 입술로 하는 회개는 가짜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는 '후회'가 아닙니다. '유턴(U-turn)'입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세리장 삭개오를 기억하십니까? 그는 예수님 앞에서 눈물만 흘리지 않았습니다. "제 재산의 절반을 털어 가난한 자를 돕고, 남의 것을 빼앗은 게 있다면 4배로 갚겠습니다." 이것이 진짜 회개입니다. 피해 입힌 것에 대한 철저한 배상과 책임. 이것 없이 말로만 하는 "주여, 잘못했습니다"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3. 피해자의 고통을 건너뛰는 은혜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피해자의 신음 소리를 외면하고 가해자와 '직거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 그 사람을 찾아가십시오. 그 사람의 용서를 구하고,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 과정이 생략된 평안은 가짜입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정신 승리'입니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지 마십시오."
용서는 피해자의 권리이지 의무가 아닙니다.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원수를 사랑하라"며 등을 떠미는 것은 또 다른 폭력입니다. 하나님은 충분히 기다려 주십니다.

결론: 무거운 은혜를 구하며

우리가 믿는 복음은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값으로 산 '비싼 은혜'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회개 또한 무거워야 합니다.

말뿐인 사과가 아니라, 삶을 뜯어고치는 치열한 몸부림이 있을 때, 비로소 세상은 교회의 용서를 '기적'이라고 부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