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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죄 짓지 말라'는 말, 이제 그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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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12.09 09:04

부제: 선악의 감옥에서 나와 '연약함'을 긍정하는 법

"오늘 하루, 죄를 안 짓고 살 수 있습니까?"

솔직해집시다. 불가능합니다. 숨 쉬는 것 빼고는 다 죄인 게 우리 인간입니다.
미워하고, 질투하고, 욕심내고... 마음속 CCTV를 켜보면 우리는 모두 사형수입니다.

그런데 기존 교회는 자꾸만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일'에 목숨을 겁니다.
"이건 죄다, 저건 아니다", "술 마시면 죄다, 주일 빠지면 죄다."
이 구분이 과연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까요? 아니요, 오히려 우리를 '위선자'로 만듭니다.

죄에 집착하면 필연적으로 '비교'하게 됩니다.
"나는 저 사람보단 낫지. 나는 십일조도 하고 새벽 기도도 하니까."
죄를 짓지 않으려는 노력이 오히려 '영적 우월감'이라는 더 큰 죄를 낳는 아이러니입니다.

1. 선악의 구분은 '무용(Useless)'합니다

상황에 따라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되기도 합니다.
거짓말은 나쁘지만, 독립군을 숨겨주기 위한 거짓말은 생명을 살립니다. 폭력은 나쁘지만, 학대받는 아이를 구하기 위한 무력은 정의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팩트(Fact)는 고정된 선악이 아니라, 상황(Context)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니 무 자르듯 선악을 나누는 건 무의미합니다.

2. '죄인'이 아니라 '약한 사람'입니다

이제 관점을 바꿉시다. 우리는 '나쁜 놈'이 아니라 '약한 놈'입니다.
일부러 악을 행하려는 게 아니라, 유혹에 약하고 감정에 약해서 넘어지는 존재입니다.

나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타인의 연약함도 보입니다.
"저 인간은 왜 저래?"가 아니라 "아, 저 사람도 나처럼 힘들어서 저러는구나"라는 '측은지심'이 생깁니다.
정죄가 멈추고, 포용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3. 새로운 기준 : "사랑하려고 애썼는가?"

죄냐 아니냐를 따지는 낡은 법전은 덮어버립시다. 대신 새로운 질문을 던집시다.

  • "오늘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려 했는가?"
  • "완벽하진 못했어도, 최선은 다했는가?"

이거면 충분합니다. 사랑하려고 했는데 실패했다고요? 욱해서 화를 냈다고요?
"에라 모르겠다, 그건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고 털어버리십시오.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결과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창조주의 몫입니다.

결론 : 죄책감을 버리고 평안을 얻으십시오

죄책감은 마귀가 주는 것이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죄 안 짓고 덜덜 떨며 사는 모범생이 되길 원치 않으십니다.
넘어져도 툭 털고 일어나 다시 사랑하러 가는, '자유로운 탕자'가 되길 원하십니다.

죄는 집어치우십시오. 선악과도 뱉어버리십시오.
당신은 그저, 당신의 분량만큼 사랑하며 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