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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즉 우리가 경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맺는 삶의 열매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슬람과 한국 개신교가 맺은 열매를 비교하며 우리가 나아갈 길을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1. 이슬람 : '삶의 시스템'으로 해석하다
무함마드와 초기 무슬림들에게 종교는 사변적인 교리가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는 구체적인 법률이자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신앙은 "무엇을 믿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행동)"의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생활화된 자선(Zakat)'이라는 놀라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돕는 것은 특별한 선행이 아니라, 세금을 내듯 당연한 일상의 의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문자적 해석에 치우치다 보니, 규범에서 벗어난 타자(여성, 타종교인)에게는 배타적이고 억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2. 한국 개신교 : '구원의 방주'로 해석하다
반면, 한국 개신교는 성경을 주로 '죽어서 천국 가는 티켓'이나 '개인의 축복'으로 해석했습니다.
세상은 도피해야 할 죄악 된 곳이고, 교회만이 유일한 피난처(방주)였습니다.
이 해석은 세계 유례없는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왔습니다.
그 막강한 조직력으로 국가가 감당 못 할 압도적인 물량의 사회복지를 감당해낸 것은 분명한 공로입니다.
그러나 한계 또한 명확합니다. '우리끼리'의 결속을 강조하다 보니, 사회 전체의 정의보다는 개별 교회의 성장에 에너지가 집중되었습니다.
세상은 교회의 봉사를 순수한 사랑이 아닌, "교세 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풍성한 봉사의 양(Quantity)에 비해 존경받는 정의의 질(Quality)은 아쉬운 것이 현실입니다.
3. 결론 : 균형의 회복을 위하여
두 종교의 역사는 우리에게 명확한 교훈을 줍니다.
"어떤 안경을 쓰고 경전을 보느냐가 세상을 바꾼다."
- 이슬람이 보여준 '생활 속의 끈끈한 공의'
- 개신교가 가진 '복음의 뜨거운 역동성'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품어야 합니다.
성경은 개인의 위로를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상의 공의를 세우는 혁명의 책이기도 합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24)
이제 한국 교회는 '성장'을 넘어 '성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되, 차가운 머리로 세상의 아픔을 구조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
그 균형 잡힌 해석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세상이 존경하는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