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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는교회

왜 하필 '밥'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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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12.08 15:52

부제: 가장 귀찮지만, 가장 거룩한 가족의 의식

"그냥 각자 편하게 사 먹으면 안 될까요?"

솔직히 인정합니다. 밥을 함께 해 먹는다는 것은 다소, 아니 아주 많이 귀찮은 일임에 분명합니다.
메뉴를 정하고,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불 앞에 서서 요리하고, 다 먹은 뒤엔 설거지와 뒷정리까지.
효율성을 따지자면 배달 앱을 켜거나 편의점 도시락을 사 먹는 게 훨씬 합리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굳이 이 귀찮은 일을 자처합니다.
왜냐하면, 함께 밥을 먹는 것은 단순한 '식사' 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1. 식구(食口) : 밥을 함께 먹는 입

가족을 뜻하는 한자어 '식구'는 문자 그대로 '밥을 같이 먹는 입'이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피가 섞였어도 밥상을 나누지 않으면 남과 다를 바 없고, 피 한 방울 안 섞였어도 매일 밥상을 나누면 그것이 곧 가족입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죄인, 세리, 어부...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을 부르셔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거창한 설교가 아니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밥상머리에서 오고 가는 숟가락 소리 속에, 경계심은 허물어지고 비로소 '우리'가 됩니다.

2. 불편함이 주는 선물

함께 밥을 하고, 함께 치우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과정.
'불편한 시간'이야말로 현대인이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가치입니다.

  • 쌀을 씻으며 오늘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냅니다.
  •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에 굳어있던 마음이 녹습니다.
  • "맛있다"는 말 한마디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합니다.
  • 설거지를 나누며 혼자가 아님을 느낍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가족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거룩한 의식'이라 믿습니다.

결론 : 밥심으로, 사랑으로

그래서 우리는 교회의 문을 열며 가장 먼저 밥을 짓습니다.
화려한 조명도, 웅장한 사운드도 없지만, 갓 지은 따뜻한 밥 냄새가 나는 곳.

우리는 밥을 먹습니다.
당신의 허기진 배뿐만 아니라, 외로운 마음까지 채우기 위해서.
우리는 그렇게 진짜 '식구'가 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