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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차가운 이성이 뜨거운 형제애를 지키는 역설에 대하여
"목사끼리 동업하면 무조건 깨진다."
목회 현장에서 전설처럼, 아니 저주처럼 내려오는 말입니다.
저 역시 이 말을 뼈저리게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직접 해봤고 처절하게 실패해 봤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나빠서였을까요? 사랑이 부족해서였을까요?
아니요, 돌이켜보니 우리는 너무 뜨거워서 문제였습니다.
우리에겐 '사랑'만 있었지, 관계를 지탱할 '뼈대(System)'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1. '가족 놀이'라는 달콤한 독배
우리는 흔히 교회나 공동체를 시작할 때 낭만에 취하곤 합니다.
"우리는 가족이야", "형님 동생 하면서 은혜로 가자."
듣기엔 참 좋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가족됨이 아니라, 어설픈 '가족 놀이'일 뿐입니다.
가족은 서로의 치부를 덮어주지만, 일터에서의 모호함은 서로에게 독이 됩니다.
- 누가 결정을 내릴 것인가? (의사결정권의 부재)
-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책임 소재의 불분명)
- 헤어질 땐 어떻게 할 것인가? (이별 매뉴얼의 부재)
이 중요한 질문들을 "은혜"라는 이름으로 뭉개버린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기대했던 사랑은 실망으로 변하고, 뜨거웠던 열정은 서로를 향한 비난의 화살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2. 비즈니스 정글에서 배운 진리
목회를 잠시 내려놓고 비즈니스 현장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굴러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냉정했습니다. 하지만 그 냉정함 속에 질서가 있었습니다.
작은 스타트업들이 거대 기업과 싸우기 위해 '컨소시엄(Consortium)'을 맺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지분을 명확히 하고, 역할을 칼같이 나누고, 성과를 냉정하게 평가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차갑게 선을 그은 그들이 누구보다 뜨겁게 서로의 등을 지켜주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아, 선(Line)이 있어야 비로소 안심하고 기댈 수 있구나."
경계가 명확할 때, 우리는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온전히 존중할 수 있다는 역설을 깨달았습니다.
3. 차가운 계약서가 지키는 온기
그래서 우리는 다시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계약서'를 씁니다.
- 완벽한 독립: 각자의 목회 철학을 100% 존중합니다.
- 완벽한 협업: 예배라는 본질적 가치 앞에서는 하나가 됩니다.
- 깔끔한 이별: 헤어짐의 순간조차 아름답도록 미리 약속합니다.
누군가는 묻습니다. "교회가 무슨 주식회사냐? 너무 정 없다."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흐지부지한 말로 때우는 '가짜 은혜'보다, 명확하고 차가운 계약서가 우리의 '진짜 형제애'를 지켜준다는 것을요.
결론 : 신뢰라는 단단한 땅 위에서
서로의 권리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맹세.
그 차가운 이성의 토대 위에서만, 우리는 비로소 마음 놓고 뜨겁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계약합니다.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 사랑합니다.
우리는 [계약]으로 뭉치고 [사랑]으로 사역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실패를 딛고 일어선 이유이자, 새로운 희망의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