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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소시엄교회

목사님, 우리는 무엇을 위해 '대장'이 되려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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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12.08 15:06

부제: 목회자의 내려놓음과 가난에 대하여

"교회를 부흥시켜서 경제적 안정을 이루겠다."
많은 목회자들의 솔직한, 혹은 숨겨진 욕망입니다.
성도 수가 늘면 헌금이 늘고, 사례비가 오르고, 노후가 보장된다는 공식.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 공식을 '하나님의 축복'이라 부르며 쫓아왔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물어봅시다.
그것은 축복입니까, 아니면 자본주의가 주입한 '허상(Illusion)'입니까?

1. '대형 교회의 성공 신화'가 남긴 것

우리는 수천 명의 성도를 모으고, 거대한 예배당을 짓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형 교회들을 부러워했습니다. 그것이 목회의 성공 모델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세습 논란, 재정 비리, 성범죄, 권력 다툼... 뉴스를 장식하는 교회의 부끄러운 민낯은 대부분 '성공했다'고 믿었던 바로 그곳들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경제적 안정'과 '거대한 권력'이 목회자에게 독이 된 것입니다. 배고픈 시절의 순수했던 기도는 사라지고, 지켜야 할 기득권만 남았을 때, 목회는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2. 가난, 그것이 왜 두려운가?

"목사가 가난하면 덕이 안 된다."
이 말처럼 성경을 왜곡하는 말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고, 바울은 천막을 짓는 노동으로 생계를 이었습니다.

우리는 왜 가난을 '저주'나 '실패'로 여깁니까? 목회자가 가난을 받아들이는 것, 성도들의 헌금에 기생하지 않고 최소한의 삶(Minimal Life)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부끄러운 일입니까?

오히려 잃을 것이 없는 가난한 목회자야말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가장 담대하게 진리를 선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부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설교를 타협하지 않는 자유함, 그것이 진짜 목회의 능력 아닐까요?

3. '맞벌이(이중직)'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훈장'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택배를 하고, 대리운전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합니다. "내가 목회에만 전념해야 하는데..."라며 자책합니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봅시다. 땀 흘려 일하는 목회자야말로 성도들의 삶을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월요일 아침 출근길의 지옥철을 경험해 본 목사만이 직장인의 애환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 진상 손님에게 고개 숙여본 목사만이 자영업자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습니다.

목회는 강단 위에서 폼 잡고 지시하는 '대장 놀이'가 아닙니다. 성도들과 똑같이 세상의 풍파를 맞으며, 그 치열한 삶의 현장 한복판에서 함께 뒹구는 것입니다. '일하는 목사'는 무능력한 것이 아니라, 가장 '성육신(Incarnation)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4. 내려놓음 : 진짜 대장이 되는 길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욕망을 내려놓읍시다.
내 이름 석 자를 알리려는 명예욕을 내려놓읍시다.
성도들을 내 노후 대책으로 여기는 마음을 내려놓읍시다.

우리는 '대장'이 되려고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종(Servant)'이 되려고 부름받았습니다.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노동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목사.
교회 사이즈가 작아도, 내 통장이 비어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하는 목사.

이 시대가 기다리는 것은 화려한 스펙의 경영자형 목사가 아니라,
정직하게 땀 흘리고 기꺼이 가난해질 줄 아는 '진짜 목사'입니다.